‘서울시민인권헌장’ 유감 -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위원(유*희)

kh TV   |  2014-12-11 12:39:02  |  조회 9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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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천만 서울시민이 만들었다고 하는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에 참여했던 한 장애 시민위원이 그 동안의 괴로웠던 심정과 제정 과정의 비리와 문제점들을 폭로하였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서울시민인권헌장'의 적나라한 실체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자.

 

 

‘서울시민인권헌장’ 유감

헌장 제정위원  (유*희)

 

안녕하세요?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위원 유진희입니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이하 헌장)은 결국 ‘폐기’하게 되었습니다. 총 시민위원 과반수도 되지 않는 인원으로 표결 처리한 결과를 서울시가 ‘합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무런 직함도, 명함도 없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그런 제가 지난 8월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위원(이하 시민위원)이 되었습니다. 어떤 거창한 꿈이나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뭔가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장애인입니다. 다리가 불편하고, 늘 통증을 달고 삽니다. 제가 ‘인권’이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짧지 않은 인생 살아오는 동안 늘 ‘차별’에 대한 상처와 불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내가 가서 한 목소리 보태어 뭔가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하는 긴장된 설렘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해 온 언젠가부터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특히나 강남과 강북에서 각각 열렸던 권역별 토론회와 공청회에 다녀온 후에는, 이 헌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에 구체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든 의문은 세 가지였는데, 첫째는 차별을 받는 대상이 왜 성소수자만인가, 둘째는 시민위원 150명에 전문위원 30명을 더한다 해도, 고작 180명의 의견이 과연 서울시민 전체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가, 셋째는 헌장은 구속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차별을 받는 대상이 왜 성소수자만인가?


‘인권’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답게 살 권리. 정말 더 없이 좋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에 시민위원으로 일하면서, 여기서는 이 ‘인권’이라는 단어가 특정 부류, 특정 집단에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끝내 합의가 안 된 부분은 성소수자 차별금지조항 포함 여부였습니다. 다른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저는 장애인 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온통 성소수자, 성적 취향 부분에만 집중하며 갑론을박 토론하였습니다.

 

저는 유식하지 않고, 정치나 사회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 없던 사람입니다. 성소수자, 성적 지향, 그런 말도 여기 와서 처음 들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건 똑같이 ‘인권’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전문위원들이 생각하는 ‘인권’과 제가 생각하는 ‘인권’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의 인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직 성소수자들만을 위한 인권이었습니다. 마음이 참 씁쓸했습니다.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인권’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결코 성소수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시민위원과 전문위원을 합한 180명의 의견이 과연 서울시민 전체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가?


시민위원은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혔다고 합니다. 그건 지원율이 그렇다는 겁니다. 일천여 만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의미로 본다면, 시민위원 한 사람이 서울시민 오만여 명의 의견을 대변해야 합니다. 시민위원이 함께 만드는 이 헌장 안에 전체 서울시민의 뜻이 최대한 반영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정 편의상 시민위원을 선출하여 회의 현장에서 일하게 한 것뿐이지, 그들 자체가 서울시민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서울시민의 의견들을 다각도로 듣고 수렴하여 헌장에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시민 여론을 수렴하기도 했고, 두 차례에 걸친 토론회에서도 시민의 의견들은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의견들은 헌장에 적극 반영되지 못하였습니다.

 

셋째, 헌장은 구속력이 있는가?


저는 아주 어릴 때 한창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딱 그 정도…. 저는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헌장은 법률과 조례처럼 법적인 구속력을 갖진 않지만, 시민 모두가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의 내용을 담는 상징적 선언으로서의 의미로만 받아들였습니다. 실제로 회의를 돕는 퍼실리테이터도 그렇게 말해 주었기 때문에 심적으로 별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회의 과정에서 ‘헌장의 이행’이라는 분과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헌장의 이행이라는 건, 결국 헌장에서 결정된 모든 사항을 실제로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규범과 기구 등 제도를 마련한다는 것인데, 더 나아가 인권교육과 홍보, 그리고 이행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평가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선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뭔가 찜찜하였습니다.

 

이렇게 여러 의문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저는 6차 회의까지 성실히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회의의 원칙과 방향에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처음 전문위원들은 사회자나 간사 역할만 한다고 했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중립’을 벗어나 직접 의견도 내고, 분과 총무 선출에도 관여하고, 그들 원하는 대로 방향을 종용하였습니다. 전문위원 수도 어느 틈엔가 늘어났고, 참석 대상자가 아니었던 전문위원이 총무단회의 때 참석하여 표결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투명하지 않은 이런 행태는 결국 불신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 헌장이 선포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첫째, 이 헌장에서 말하는 ‘인권’이 보편적인 인권이 아니라, 오직 성소수자에 편중된 인권을 주로 의미하고 있기에 다수의 ‘진정한 인권’으로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이라는 이름에 결코 합당치 않습니다.

 

둘째, 성소수자 관련 조항은 아직 사회적 합의와 공감이 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두 번의 권역별 토론회와 공청회의 상황을 직접 지켜 본 결과,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못하고 거부하고 있는데, 이를 우리 시민위원들끼리 다수결로 결정하여 헌장에 넣는다는 건 더 깊은 사회적 갈등과 반목만 조장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마지막 6차 회의 때는 서울시에서, 미합의사항에 대해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결 형태의 처리방식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표결은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표결을 반대하는 일부 위원들이 퇴장한 후, 남은 시민위원들끼리 모여 표결된 ‘60:17’이라는 결과는 서울시민 전체의 뜻이라고 주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이 헌장은 결코 서울시민이 함께 만든 헌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도 그동안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을 이 헌장에 기울여 왔던 만큼 많이 허탈하고 속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헌장은 진정한 시민헌장이라고 볼 수 없기에 폐기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헌장은 그저 상징적 선언의 의미로 끝났으면 합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외에도 인권으로 보호받아야 할 수많은 부류의 사람이 이 땅에, 이 시대에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만드는 모습(각 테이블 마다 병풍으로 가려져 있다)

2014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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